스트라이커의 교과서 - 현역 선수 중 명예의 전당 후보 0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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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Gabriel Omar Batistuta 별명 : 바티골 (Bati-Gol) 생년월일 : 1969년 2월 1일 국적 : 아르헨티나 출생지 : 레콘퀴스타, 산타페 신장 : 185cm 체중 : 73kg 포지션 : FW 국가대표 데뷔 : 1991. 3. 27 - 對 브라질 (1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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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올 시즌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월드컵 주전 자리에 먹구름이 끼었지만 지난 10년간 세계 최고의 골잡이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가 대표 48골로 역대 아르헨티나 대표 선수 중 최다 골 기록을 가지고 있고, 이탈리아 Serie A 외국 선수 최대 골 기록, 월드컵 사상 초유의 2회 연속 헤트트릭 등...
모든 상황에서 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으로 바티골(Bati-Gol)이라는 특이한 별명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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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왼발, 오른발을 모두 사용 가능하며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강한 슛을 구사합니다. (그는 원래 오른발잡이였지만 피나는 연습의 결과로 왼발의 힘을 키웠다고 합니다.) 헤딩력도 뛰어 나며 그에게는 각도가 없다고 판단되는 지역에서도 결코 안심할 수 없습니다. 그는 놀라운 프리킥 능력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99/00 시즌 라치오와의 30라운드에서의 프리킥 동점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입니다. (참고로 당시 라치오는 질 경우 우승권에서 멀어지는 아주 중요한 고비였고 Fiorentina의 수문장 Toldo는 후반 종료 직전 페날티킥을 막아 내지만 결국은 단 1분 후 두 번째 PK를 허용하고 맙니다. 3:2로 뒤지던 인저리 타임에 얻은 마지막 프리킥을 멋지게 차 넣고 말죠. 그 경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저는 그때의 녹화 테이프를 아직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축구광으로도 유명한 '로마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죠. '그의 프리킥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하다.'
축구 실력뿐 아니라 그는 인간적으로도 아주 성공적인 선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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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선 사업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으며 불우한 어린이들을 자주 초대합니다.
제 기억에는 예전에 중요한 리그 경기에 팀 규정을 어기고 불우 어린이를 초청해서 징계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선수로 말디니와 함께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랜동안 피오렌티나와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 팀에서 주장을 맡아 왔으며 경기 중 그의 카리스마는 놓칠 수 없는 모습 중 하나입니다.
또한 그는 (지금은 조금 망가졌지만...) 마치 예수를 연상시키는 수려한 외모와 섹시한 몸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섹시한 인물로 선정된 적도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죠. " 한번이라도 좋으니 카메라맨으로 분장해서 운동장에 들어가 바티의 경기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from yahoo.com)
특이한 점은 그는 축구를 그다지 즐기지는 않으며 공부도 곧잘 해서 어린 시절 축구선수와 의사 사이에서 갈등했다고 합니다.
(그는 현재도 축구를 그다지 좋아 하는 편은 아니라고 하죠.) 그리고 그는 야구 선수 경력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재능때문에 결국은 17살이라는 매우 늦은 나이에 축구에 입문합니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재능 및 여러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우승 경력 및 상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그는 그 흔한(?) 리그 우승도 다 늦은 지난 시즌 겨우 맛보게 되죠. 그는 월드컵은 물론 유럽 3대컵도 한번도 차지하지 못 합니다.
Fifa 최우수 선수에도 선정된 적이 없고 골든 슈도 단 한번 밖에 차지한 적이 없습니다. 늘 시즌 20골 가까이 기록하지만 주로 득점 2위를 많이 차지했습니다.
피오렌티나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지난 99/00 시즌에도 23골로 안드레이 쉐브쳉코에 이어 2위에 그쳤지만 모두 순수한 필드 골로 Penalty Kick 골을 7골이나 기록한 Sheva와 비교하면 실질적인 득점왕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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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스투타는 카 퍼레이드까지 하며 로마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AS Roma로 이적했고 이적 후 바로 첫 시즌인 00/01 시즌에 로마를 27년만에 우승을 시킵니다.
그의 축구 생활 역시 피오렌티나와 그 흥망을 함께 했습니다. 그는 피오렌티나에서 9시즌동안 168골을 기록합니다. |
![]() 피오렌티나 유니폼 |
그러나 역시 피오렌티나는 스쿠데토를 차지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전력이었는지 그는 우승을 경험하지 못 합니다.
바티는 우승에 매우 목 말라 있었으나 계속해서 팀을 옮기지 않고 97/98 시즌에 Serie A 통산 100번째 골을 기록합니다.
98/99 시즌 세계적인 명장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참고로 트라파토니에 대해 잠시 말해 보자면 현재 2002 월드컵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이며 무려 7회의 Serie A 우승, 2회의 Italian Cup 우승, 유럽 3대컵 모두 우승, 도요다컵 우승 등 트로피란 트로피는 모두 차지해 봤으며,
특히 90년대초 Milan의 전성기를 이끌며 91/92 시즌부터 3연속 우승기록을 가지고 있는 화려한 감독입니다.)
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우승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우게 됩니다.
선수들의 사기는 최고였으며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이며 1위를 지키던 피오렌티나는 2월 7일 운명의 날 강팀 밀란과 마주치게 됩니다.
결국 경기는 1:0으로 승리했으나 바티의 부상으로 팀은 그 후 아쉽게 밀란에게 우승을 넘겨 주게 되고 라치오에까지 밀려 3위로 시즌을 마감합니다.
(당시 라치오는 현재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스벤 고란 에릭손이 맡고 있었으며 전형적인 4-4-2를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시즌 초반 라치오의 조직력은 필자를 몹시 감탄하게 만들었고 당시 우승은 라치오가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죠. (며칠 후)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그 다음 시즌이었던 것 같군요.)
트라파토니 감독은 훗날 이렇게 말했죠. "그 경기에 이기고 바티를 잃었던 것보다 차라리 그 경기에서 패하고 바티가 다치지 않았더라면..."
이에 바티는 크게 실망했고 결국 한 시즌을 더 보낸 후 오랫동안 정들었던 피오렌티나를 떠나게 됩니다.
당시 La Viola(피렌체의 팬)의 데모는 줄을 이었으나 이제 그를 보내 줘야 한다는 주장에 밀려 몇 년 전 로비(로베르토 바지오)가 팀을 떠날 때보다는 조용하게 보내 주는 분위기였죠.
당시 필자는 Soccer Forum 등의 사이트에서 팬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그는 자신이 할만큼 최선을 다 했고 이제 그도 우승을 경험할 수 있는 강한 팀으로 가야한다는 것에 모두가 대체로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 감격의 스쿠데토 |
바티스투타는 카 퍼레이드까지 하며 로마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AS Roma로 이적했고 이적 후 바로 첫 시즌인 00/01 시즌에 로마를 27년만에 우승을 시킵니다.
이제 그에게는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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